Seungjoon Song




SeungJoon Song reexamines
cultural and historical contexts
through the concept of nature,
revealing how prejudices and
misconceptions surrounding the
notion manipulate our reality. 

Song attempts to redefine the
concept of nature from an inter
-relational ecosystem perspective
through design field in order to
deconstruct the binary thinking
between humans and nature.






Information

Works

DMZ Biodiversity

ep.1) Hyper Green Zone

ep.2) The Pollinator

ep.3) 
Chrolism-Style

Instagram






세네카와 크롤리즘 (Seneka and Chrolism)




세네카 (Seneka)


초거대 녹색지대의 시대에서 세네카(Seneka)는 사회 최상위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일본어로 ‘등’을 뜻하는 せなか(背中, senaka)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곧 결코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이자 타인의 등 위에 올라 군림하는 그들의 권위를 은유했다. 세네카의 기원을 이루는 이들은, 녹색지대의 출현이 불러온 혼란을 교묘히 이용하여 공동의 선은 외면한 채 오직 사적 탐욕만을 좇아 막대한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는 초고율 광합성 유도제 PRF 개발에 투자해 막대한 폭리를 취한 투기꾼, WGZ 조직에 항바이러스 무기를 밀거래하며 전쟁을 수익 수단으로 삼은 방산 재벌, 그리고 특수 호흡 장치 N.O.G.를 그린후드의 얼굴에 영구 이식하는 사업을 제안하며 인간성까지 상품화한 냉혹한 사업가 등이 포함됐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서슴지 않는 태도를 대물림하며, 수 세기에 걸쳐 권력을 이어갔다.


In the era of the Hyper Green Zone, Seneka denoted the highest social stratum. The name came from the Japanese word せなか (senaka), meaning “back,” symbolizing those forever out of reach—rulers standing upon the backs of others. Seneka’s origins lay in those who exploited the chaos caused by the Green Zone’s emergence, forsaking the common good to pursue private greed and vast wealth. Among them were speculators who profited from the high-rate photosynthesis inducer PRF, arms magnates who turned war into business by smuggling antiviral weapons to the WGZ organization, and entrepreneurs who proposed permanently implanting N.O.G. breathing devices onto the faces of the Greenhood, commodifying even human identity. Driven by profit and devoid of restraint, they passed down this ruthless ethos for centuries, preserving their power across generations.




세네카의 파노라마 룸 (Seneka’s Panorama Room)


세네카들은 녹색지대의 위협이 완벽히 차단된 안전구역 아래의 호화로운 지하 벙커에서 생활했다. 난민들은 하늘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공중 난민촌으로 향했지만, 세네카들은 흔들림 없는 땅속 깊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눈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세습된 탐욕의 화폐로 세계를 은밀히 지배했다. 개미굴처럼 연결된 지하 방들 중에는 ‘파노라마 룸(Panorama Room)’이라 불리는 특별한 방이 있었다. 그곳은 세네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던 상류 문화인 녹색지대 사진 감상을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초거대 녹색지대 사회에서는 녹색을 지닌 모든 것이 위협 요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녹색지대 사진을 소지하고 감상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위치에 있던 세네카들에게 정부의 감시와 통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파노라마 룸은 화려한 건축적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사방에는 현란한 모양의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 속에서 세네카들은 오랜 세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숲이 짙게 우거진 녹색지대의 풍경을 감상하며 사치스러운 연회와 사교를 즐겼다.


The Seneka lived in luxurious underground bunkers beneath the safe zones, completely sealed off from the threats of the Green Zone. While refugees drifted toward precarious floating settlements in the sky, the Seneka hid deep beneath the unshaken ground. Though unseen, they ruled the world in secret with the inherited currency of greed. Among the maze-like chambers was the Panorama Room, a space devoted to their most coveted pastime—the viewing of forbidden Green Zone photographs. In that era, anything green was deemed dangerous, and such images were strictly banned. Yet government surveillance meant nothing to those in absolute power. The Panorama Room was lavishly adorned, its walls lined with ornate frames. There, the Seneka held extravagant banquets and gatherings, gazing upon images of the dense, untouched forests of the Green Zone.




크롤리즘 (Chorlism)


미상의 바이러스와 변이 생명체가 서식한다고 전해진 녹색지대는 인류에게 두려움의 땅이었지만, 크롤리즘(Chlorism) 신자들에게는 이상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들은 울창한 초목에 경외심을 느끼며, 그 생명의 근원인 광합성을 단순한 생화학적 현상이 아닌 신성한 힘으로 여겨 숭배했다. 햇빛이 풍부한 적도 일대의 녹색지대 주변에 정착해 살던 크롤리즘 신자들은 작고 왜소한 체구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신자들은 낮에 광합성을 하고 밤에 활동하는 식물의 주기에 맞춰 생활했다. 투명한 온실을 닮은 전통 침실, 솔룸(Solroom)에서 낮 동안 잠을 자며 햇빛을 흡수했고,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했다. 포도, 베리류, 무화과 등 밤에 수확하는 과일을 재배했고, 이를 태양 빛에 말려 섭취했다. 그들은 식물처럼 묵묵히,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체 흐름을 억제하며 엄격한 규율 속에서 식물의 삶을 수행했다.


The Green Zone—believed to harbor unknown viruses and mutated organisms—was a land of fear for humanity but a paradise for the followers of Chrolism. They revered the lush vegetation and worshiped photosynthesis, the source of all life, not as a biochemical process but as a sacred power. Living near the sun-drenched equatorial edges of the Green Zone, the Chrolists were small and bronze-skinned. They followed the rhythm of plants, performing photosynthesis by day and becoming active at night. In their transparent, greenhouse-like Solrooms, they slept under sunlight and awoke after dark. They cultivated night-harvested fruits such as grapes, berries, and figs, drying them in sunlight before eating. Like plants, they lived in silence and discipline, suppressing human impulses to embody a vegetal way of being.




크롤리즘 스타일 (Chrolism-Style)


문명과 거리를 둔 채 광합성을 숭배하며 살아가던 크롤리즘 신자들은 세네카들에게 신비로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녹색지대 풍경을 즐겨 감상하던 세네카들은, 녹색지대에 대한 동경을 담아 만들어진 크롤리즘의 제의 도구와 성물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를 이용해 파노라마 룸을 장식하고자 했던 세네카들은, 공중 난민촌으로 이주하지 못한 채 녹색지대 인근을 떠도는 난민들을 고용해 약탈을 명령했다. 난민들은 크롤리즘 신자들이 낮잠을 자는 틈을 타 여러 차례 습격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신자들이 저항하다 희생되었다. 크롤리즘의 성스러운 신앙심이 깃든 물건들은 분해되고 재조합되어 파노라마 룸의 액자와 건축 장식으로 새롭게 제작됐으며, 세네카들은 이를 크롤리즘 스타일(Chrolism Style)이라 불렀다. 크롤리즘 스타일의 파노라마 룸은 빠르게 유행하였고, 세네카들은 그곳에서 크롤리즘 전통 악기 펠리아나(Feliana)로 연주되는 라운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2357년, 크롤리즘은 세네카들이 일으킨 크롤리즘 스타일 신드롬이 이어지며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Living apart from civilization and devoted to the worship of photosynthesis, the followers of Chrolism became objects of fascination for the Seneka. The Seneka, who delighted in viewing Green Zone landscapes, were particularly captivated by Chrolist ritual tools and sacred artifacts that embodied a longing for the forbidden green. They hired refugees who had failed to reach the floating settlements and ordered them to raid Chrolist villages. The raids took place while the Chrolists slept during the day, and many were killed resisting the attacks. The plundered relics were dismantled and reassembled into frames and ornaments for the Panorama Rooms—a style the Seneka called “Chrolism Style”. It quickly became a fashion among the elite, who danced to lounge music played on traditional Chrolist instruments called Feliana. In 2357, Chrolism came to an end, consumed by the very Chrolism Style craze ignited by the Sene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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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리즘의 아홉 가지 제의 도구와 성물 (The Nine Holy Artifacts of Chrolism)




(1) 솔룸 지붕 조각 (Solroom Roof Fragment)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크롤리즘 신자들은 고산지대에 가족 단위로 검소한 흙집을 지어 생활했다. 집 마당 한켠에는 약 4평 남짓한 크롤리즘의 전통 침실, 솔룸(Solroom)이 자리했다. 솔룸은 단촐한 오두막 같았지만, 벽과 지붕이 모두 투명하게 만들어져 사방으로 햇빛이 스며들어 작은 온실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은 신념에 따라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던 PRF 목재를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과 유리, 금속 파이프로 솔룸을 지었다. 특히 태양을 받는 지붕은 태양을 향한 첫인상으로 신성하게 여겨졌으며, 태양을 환대하는 의미에서 식물의 유기적인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솔룸 지붕을 오염 없이 투명하게 관리하는 일은, 토템 의식에 이어 크롤리즘에서 중요한 의례 중 하나로 꼽혔다.


Living in harmony with nature, the followers of Chrolism built humble earthen homes in the highlands. In the yard of each stood a small traditional bedroom called the Solroom, measuring roughly thirteen square meters. Though modest in form, the Solroom’s transparent walls and roof allowed sunlight to pour in from every direction, creating a serene, greenhouse-like atmosphere. In accordance with their beliefs, the Chrolists refused to use the easily available PRF wood of the time, instead constructing the Solroom with plastic, glass, and metal pipes. The sun-facing roof was considered sacred—the first surface to greet the sun—and was adorned with organic plant motifs in reverence. Keeping it perfectly clear and unpolluted was one of Chrolism’s most important rituals, second only to their totemic rites.




(2) 네 자매와 네 개의 촛대 (Four Candlesticks and the Four Sisters)


크롤리즘 신자들은 밤에 활동했지만, 별도의 조명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달빛에 의지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적도 지방에 우기가 절정에 이르면, 신자들은 부족한 일조량을 보충하기 위한 종교적 의식으로, 솔룸 네 모퉁이 벽에 고정된 네 개의 촛대에 불을 켜두었다. 이 네 촛대는 크롤리즘 경전에서 광합성으로 묘사되는 네 생명의 여신을 의미했다. 경전에 따르면, 광합성은 태양신의 네 딸로서 하늘에서 내려와 아버지인 태양신의 힘을 빌려 지상의 모든 생명의 근원을 이룬 창조적 존재로 숭배되었다. 광합성의 네 여신들은 각각 선태식물(첫째 모리사), 양치식물(둘째 펠리아나), 겉씨식물(셋째 제노라), 속씨식물(넷째 오르넬라)을 상징했다. 평소, 네 촛대를 켜는 것은 금기시되었으며 불경한 행위로 여겨졌다.


Although the followers of Chrolism were nocturnal, they lived by moonlight alone, using no artificial light. During the peak of the rainy season, when sunlight was scarce, they performed a sacred ritual to compensate for the lack of light—lighting four candles fixed to the corners of the Solroom. These candles represented the four goddesses of life described in Chrolist scripture, embodiments of photosynthesis itself: Morisa for bryophytes, Feliana for ferns, Xenora for gymnosperms, and Ornella for angiosperms. According to the texts, they were the four daughters of the Sun God who descended to Earth, channeling their father’s light to give birth to life. Lighting the candles outside of ritual practice was strictly forbidden and considered a blasphemous act.




(3) 광합성을 숭배하는 토템 (Totem Worshiping Photosynthesis)


크롤리즘 신자들은 녹색지대 어딘가에 비리디시아(Viridishia)라 불리는 광합성의 신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곳에 도달한 생명들은 모두 광합성을 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비리디시아는 숲의 피식자와 포식자가 어우러져 뛰노는 평화롭고 이색적인 풍경을 이루는 곳이라 전해졌다. 신자들은 비리디시아에 도달하기 위해 태양이 가장 강렬한 건기 동안 토템에 둘러앉아 반사되는 태양 에너지를 몸에 비축하는 의식을 치렀다. 그들은 의식을 통해 태양 빛을 더 많이 흡수할수록, 비리디시아로 향하는 여정에서 광합성의 신의 보호가 더욱 깊게 깃든다고 믿었다. 토템은 식물 세포 모양의 금속 판재들이 팔방으로 붙어 있는 기둥으로, 각 판재에는 광합성의 네 여신을 상징하는 네 가지 식물 분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The followers of Chrolism believed that within the Green Zone lay a sacred land called Viridishia, blessed by the god of photosynthesis. Those who reached it were said to gain the power of photosynthesis, creating a peaceful and extraordinary landscape where prey and predator thrived together in harmony. To reach Viridishia, believers performed a ritual during the dry season when the sun was strongest, gathering around a totem to absorb reflected solar energy into their bodies. They believed that the more sunlight one stored, the deeper the god’s protection would be during the journey to Viridishia. The totem was a pillar of metal plates shaped like plant cells, each engraved with patterns representing the four goddesses of photosynthesis.




(4) 비리디시아의 초대권 (Invitation to Viridishia)


열 번의 건기를 거쳐 토템 의식을 마친 신자들에게는, 광합성하는 인류 호모 크롤리스(Homo Chloris)로 거듭날 수 있는 비리디시아 입장 자격이 주어졌다. 그 자격을 증명하는 징표는 비리디시아의 초대권이라 불리는 손바닥 크기의 금속 카드로, 신자들은 이를 두 장씩 받았다. 한 장은 신자들이 녹색지대에 지니고 들어갔으며 비리디시아의 입장을 허락해 주는 표식으로 믿어졌고, 다른 한 장은 남겨진 가족과 공동체가 떠난 이를 기억하기 위해 마을에 간직되었다. 초대권의 뒷면에는 떠나는 이들이 남겨진 이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결심을 직접 새기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왔다. 크롤리즘 경전에는 총 210명의 신자가 모두 호모 크롤리스로 거듭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초대권에 새겨진 흔들리는 글씨에는 녹색지대로 들어가기 직전 신자들이 느낀 공포와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fter ten dry seasons of totemic ritual, the followers of Chrolism were granted passage to Viridishia, where they would be reborn as photosynthetic humans—Homo Chloris. The symbol of this passage was a palm-sized metal card known as the Invitation to Viridishia, of which each believer received two. One was carried into the Green Zone as proof of entry, the other was kept by their families and community as a remembrance of those who departed. On the back of each card, it was customary for the departing believers to engrave their names and final vows to console those left behind. Chrolist scripture records that 210 believers became Homo Chloris, yet the trembling inscriptions on the invitations reveal the fear that accompanied their final steps toward the Green Zone.




(5) 은빛 진흙으로 쓰인 경전 (Silver Clay Scripture)


크롤리즘 신자의 상징적 외형은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 위에 반짝이는 은빛 진흙을 덧바른 모습이었다. 신자들은 햇살 속에서 잠을 자는 관습을 오래도록 지키기 위해, 은빛 진흙으로 손상된 피부를 보호했다. 진흙이 은빛인 이유는, 크롤리즘 문화에서 금색이 태양의 색으로 금기시된 반면, 은색은 태양을 받드는 숭배의 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은빛으로 온몸을 장식하며, 태양을 오래 바라볼 수 없는 육체적 한계와 나약함을 성찰하고 광합성을 향한 경이와 동경의 마음을 깊이 새겼다. 그들의 신앙심을 의미했던 은빛 진흙은 크롤리즘의 경전을 작성하는 데에도 사용됐다. 두루마리 형식의 경전에는 그들만의 고유 문자로 기도문이 정교하게 적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나비, 사슴벌레, 하늘소 등 숲의 무구한 생명력을 담아낸 도상들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The followers of Chrolism were known for their bronze-tanned skin coated with shimmering silver clay. They used the clay to protect their sun-exposed skin, preserving their long-held custom of sleeping under direct sunlight. Silver held sacred meaning in their culture: gold, the color of the sun, was forbidden, while silver symbolized devotion to it. Adorning their bodies in silver, they contemplated their own fragility and their longing for photosynthesis. This sacred silver clay, a sign of their faith, was also used in the creation of Chrolist scriptures—scrolls inscribed in their unique writing system and adorned with images of butterflies, beetles, and stag beetles, embodying the pure vitality of the forest.




(6) PRF 규탄 시위 희생자들의 유골함 (Urn of the Victims of the PRF Protest)


오염된 녹색지대가 급속히 확산하자, 세계 정부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을 식별하고 한정된 삼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초고율 광합성 유도제 PRF(Protect the Rest of the Forest)를 개발했다. PRF를 흡수한 식물들은 햇빛의 녹색 파장까지 광합성에 활용할 수 있게 되어 검은색을 띠었고, 기존보다 300% 빠른 성장률을 보였다. PRF가 전 세계 원시림에 살포되자, 크롤리즘 신자들은 이를 광합성의 신에 대한 모독이라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태양 빛을 받으면 잎사귀처럼 환하게 빛나는 투명한 녹색 손팻말을 들고 평화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정부는 어린싹을 짓밟듯 신자들을 무력으로 무참히 제압했다. 희생자들의 유골함은 시위에서 사용되었던 부서진 팻말을 재활용하여 제작됐다.


As the contaminated Green Zone spread rapidly, the world government developed PRF (Protect the Rest of the Forest)—a high-rate photosynthesis inducer—to identify unpolluted forests and manage the remaining resources efficiently. Plants that absorbed PRF could use the green wavelength of sunlight for photosynthesis, turning black and growing three times faster than before. When PRF was released worldwide, the followers of Chrolism denounced it as blasphemy and held peaceful protests with transparent green placards glowing like leaves. But the government crushed them ruthlessly, as if trampling young shoots. The victims’ ashes were placed in urns made from the shattered fragments of their placards.




(7) 오르넬라를 위한 향로와 찻잔 (Censer and Teacup for Ornella)


크롤리즘 신자들은 햇살 아래에서 잠을 자야 하는 규율 탓에 실제로 심각한 불면과 만성적 피로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규율을 이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오르넬라(Ornella)라 불리는 한 허브 덕분이었다. 오르넬라 허브는 속씨식물을 상징하는 막내 여신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만큼, 그 효능이 탁월하여 신비롭고 영험한 식물로 여겨졌다. 줄기와 뿌리를 태워 그 연기를 들이마시면 진정 효과를 주었고, 잎을 끓여 우려 마시면 각성 효과를 나타냈다. 신자들은 낮에는 오르넬라 허브를 흡입하고, 밤에는 마심으로써 오르넬라 여신과 연결된다고 믿었으며, 이를 통해 식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신성한 힘을 나누어 받는다고 여겼다. 그들은 유일하게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의 여신 오르넬라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향로와 찻잔을 꽃모양(花形)으로 제작하고 신성히 다루었다.


Bound by the rule of sleeping under sunlight, the followers of Chrolism suffered from insomnia and chronic fatigue. Yet they endured this discipline with the help of a sacred herb called Ornella. Named after the youngest goddess of photosynthesis who symbolized angiosperms, the herb was believed to hold mystical power. Burning its stems and roots produced calming smoke, while brewing its leaves brought wakefulness. The believers inhaled the smoke by day and drank the infusion by night, believing it connected them to the goddess and granted strength to sustain a vegetal life. To honor her—the only goddess associated with flowering plants—they crafted incense burners and teacups in the shape of blossoms and treated them as sacred.




(8) 둥지 폭탄의 껍질로 만든 성배 (Holy Grail Made of Nest Bomb Shells)


녹색지대가 등장하며 생물 다양성이 회복되자, 익명의 극성 환경 운동가들은 ‘인간을 향한 위협이 인간을 구원한다’라는 모순적인 구호를 내세우며, 의도적으로 영토를 녹색지대로 만들기 위해 유전자 변형 총알개미의 둥지 폭탄 1만 개를 제작하여 투하했다. 수백 년이 흐른 뒤, 녹색지대 인근에서 생활하는 크롤리즘 신자들은 종종 이 둥지 폭탄의 잔해를 발견하곤 했다. 질기고 견고하면서도 가공이 쉬웠던 둥지 폭탄의 껍질은 PRF 목재를 대신할 재료로 활용되었고, 신자들은 이를 광합성의 신이 내린 특별한 물질로 믿었다. 그들은 둥지 폭탄의 껍질로 가구와 같은 일상용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성배와 같은 신성한 제의용 컵과 그릇을 제작하는 데에도 활용했다. 둥지 폭탄의 껍질을 재료로 삼은 크롤리즘 문화는 녹색지대의 위협을 곁에 두고 살아가던 신자들의 삶을 드러냈다.


As the Green Zone expanded and biodiversity began to recover, anonymous radical environmentalists declared the paradoxical slogan “The threat to humanity is what will save it.” To realize this belief, they engineered and released ten thousand nest bombs containing genetically modified bullet ants, intentionally turning regions into new Green Zones. Centuries later, the followers of Chrolism living near the Green Zone often discovered remnants of these bombs. The shells—tough yet easy to shape—became substitutes for PRF wood, which the believers regarded as a sacred material bestowed by the god of photosynthesis. They used the shells to craft everyday objects such as furniture, as well as sacred vessels like chalices. Chrolist craft with nest-bomb shells reflected their life beside the Green Zone’s peril.




(9) 첨단 기술로 지어진 옵솔룸 (Obsolroom Built with Advanced Technology)


태양 아래에서 활동하거나 토템 의식에 성실하지 않은 신자들에게는 어김없이 햇빛을 차단하는 형벌이 내려졌다. 처벌은 마당 한켠, 솔룸 바로 옆에 위치한 옵솔룸(Obsolroom)에서 이루어졌다. 솔룸이 사방에서 햇빛이 스며드는 공간이라면, 옵솔룸은 그와 정반대로 태양 빛이 전혀 닿지 않는 완전한 암흑의 공간이었다. 옵솔룸은 직육면체 큐브 형태의 1평 남짓한 독방으로, 외벽은 마치 거울처럼 매끈한 금속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문의 유격과 경첩 틈조차 드러나지 않도록 정밀하게 설계되어, 작은 햇빛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주변 공간이 반사되어 마치 존재하지 않는 장소처럼 보였다. 흙집을 지으며 검소하게 살아가던 신자들에게, 첨단 기술을 집약해 설계된 옵솔룸은 크롤리즘의 엄격한 규율을 실감하게 하는 증거였다.


Followers of Chrolism who acted under sunlight or neglected their totemic duties were punished by confinement in the Obsolroom, a small chamber beside the Solroom. While the Solroom was bathed in sunlight, the Obsolroom was its complete opposite—a space of absolute darkness. The Obsolroom was a small cubic cell with mirror-polished metal walls. Every seam and hinge was sealed so precisely that no ray of sunlight could enter. Its reflective surface merged with the surroundings, making the room appear almost invisible. For believers living in humble earthen homes, this stark, high-tech structure embodied the severity of Chrolism’s discipline.






1. 크롤리즘 스타일 프레임 장식 (Chrolism-Style Frame Ornament)


PRF 나무, 초거대 녹색지대 사진, 광합성을 숭배하는 토템 조각
PRF wood, green-zone photography, totem worshipping photosynthesis






2. 크롤리즘 스타일 밸러스트레이드 장식 (Chrolism-Style Balustrade Ornament)


솔룸 지붕 조각, PRF 살포 규탄 시위 희생자의 유골함, 옵솔룸 벽면 재료, PRF 나무
Fragment of the solroom roof, urn for PRF protest victims, obsolroom wall material, PRF wood






3. 크롤리즘 스타일 프리즈 장식 (Chrolism-Style Frieze Ornament)


비리디시아의 초대권, 옵솔룸 벽면 재료, PRF 나무
Invitation of viridishia, obsolroom wall material, PRF wood






4. 크롤리즘 스타일 캔들 스콘스 (Chrolism-Style Candle Sconce)


네 자매를 상징하는 촛대, PRF 나무, 양초
Four candlesticks symbolizing the four sisters, PRF wood, candle






5. 크롤리즘 스타일 웨인스코팅 장식 (Chrolism-Style Wainscoting Ornament)


오르넬라를 위한 향로와 찻잔, 옵솔룸 벽면 재료, PRF 나무
Censer and teacup for ornella, obsolroom wall material, PRF wood








6. 크롤리즘 스타일 커튼 캐비닛 (Chrolism-Style Curtain Cabinet)


은색 진흙으로 쓰인 경전, PRF 나무
Scripture inscribed in silver clay, PRF wood






7. 크롤리즘 스타일 사이드 테이블 (Chrolism-Style Side Table)


PRF 나무, 광합성을 숭배하는 토템 조각
PRF wood, totem worshipping photosynthesis






8. 크롤리즘 스타일 도어 장식 (Chrolism-Style Door Fragment)


유전자 변형 총알개미의 둥지 폭탄 껍질
Shell of a nest b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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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리즘 스타일》 전시 서문



POST MISSION: 파노라마 투어 로그」

김진주



미션

자연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인간의 언어 속에 포획된 세계였다. 우리가 자연이라 일컫는 것은 이미 인간을 중심으로 배열된 체계 안에서 길들여진 관념이다. 그것은 통제 가능한 질서로서 상상된 장소이자, 문명이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발명한 대상이었다. 송승준이 구축하는 자연관은 그 허구적인 균형을 흔들며 시작한다. 먼 미래, 2100년의 어느 시점, ‘초거대 녹색지대(Hyper Green Zone)’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자연이 지구의 주인이 된 가상의 세계다. 인간 이후의 생태, 인간 중심의 윤리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시대. 그곳은 숭고하거나 치유적인 장소가 아니라, 폭력과 생성, 아름다움과 소멸이 교차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기술, 자본, 이미지 체계…. 근대적 시스템은 자연을 보호할 대상이자 소유할 대상으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송승준의 세계는 그러한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며, 주체와 비주체의 권력 관계를 재배치하려 한다. 전시 《크롤리즘 스타일》은 그 가설적인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다. 파괴에서 재생으로, 숭배에서 약탈로, 모방에서 장식으로, 그리고 유희로 이행하는 이곳의 서사는 인간이 과연 자연을 자연이라 호명할 주체가 맞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한 윤리의 문제를 넘어, 지금까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해 온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건, 이곳을 방문한 당신에게 던져진 미션이다.



세네카

참고로, 이 글은 의도적으로 전시 후반부에 놓였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 이곳이 ‘세네카의 파노라마 룸’이라는 사실, 세네카는 송승준이 구축한 ‘초거대 녹색지대’에 사는 한 인류라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그래서 이 방은 왜 크롤리즘이 아닌 세네카의 것으로 구현되었는지 궁금해 할 당신을 위해 언어라는 도구를 빌려 본다.

‘초거대 녹색지대’에는 대비되는 두 부류의 인류가 있다. 하나는 광합성이라는 화학 작용을 신으로 숭배하는 신앙 공동체 ‘크롤리즘(Chrolism),’ 다른 하나는 지하의 어둠 속에서 사치와 통제를 향유하는 귀족 계층 ‘세네카(Seneka)’다. 파괴에서 재생으로, 숭배에서 약탈로 이어진 이 세계의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잔해 위에 세운 또 다른 문명사였다. 크롤리즘은 그 안에서 신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태양을 예배하며 자연과의 동화, 혹은 인간으로서 지닌 한계를 탈피할 꿈을 꾸었다. 낮에는 잠들어 빛을 흡수하고, 밤에는 깨어나 식물의 주기를 따라 사는 그들의 삶은, 생존을 초월한 신앙이자, 광합성을 선망한 수행의 형식이었다.

세네카는 신앙 질서를 계승한 자들이 아니라, 부와 권력으로 그것을 전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번영은 녹색지대의 재앙에서 비롯된 폭력의 유산이었고, 첨단 기술이 구축한 인공적인 안락 속에서만 유지되었다. 그들은 크롤리즘의 신앙과 상징을 약탈해 사치품으로 전용했고, 녹색의 질서를 유희의 양식으로 치환했다. 하늘 위의 난민들을 내려다보며 권력 의식에 젖었고, 지하의 벙커 안에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재현하며 타자를 배제했다. 그렇게 그들에게 자연은 지배와 향유의 언어로 재편된 이미지였다.

             녹색을 금기시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호사스럽게 소비한 자들, 세네카의 세계는 파국 이후에도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형상을 바꾸며 지속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멸망 이후에도 꺼지지 않는 문명, 혹은 문명의 패턴을 반복하는 욕망의 초상이다.



파노라마

이곳, ‘파노라마 룸’은 크롤리즘 신자들이 남긴 사물들이 어떻게 세네카의 손을 거치며 어두운 권력의 질서로 전환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실내 풍경이다. 이 방은 ‘초거대 녹색지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던 상류 문화인 녹색지대의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 마련된 곳으로, 크롤리즘의 아홉 가지 제의 도구와 성물을 활용해 세워진 유희의 공간이다. 세네카들은 크롤리즘 문화의 사물을 수집해, 세련된 취향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신앙은 유희의 원료로, 믿음은 양식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이곳에서 세네카의 시선은 신앙의 구조를 해체하는 동시에 모방하며 그 위에 감상의 프레임을 세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뷰 포인트—이 방에 새겨진, 종합적인 감상을 위한 두 좌표는 신성함의 표현을 세속적인 형식으로 탈바꿈한 세네카의 세계를 응축한다.

             ❶ 첫 번째 뷰 포인트. 액자, 사이드 테이블, 캐비닛이 한 눈에 보이는 위치. 얼핏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취향을 반영한 가구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모두 한때 크롤리즘의 제의 중심에 놓였던, 문양이 새겨진 금속의 토템 판재 일부 조각들이 재조합되었다. 세 점의 액자에는 빛을 받아야 의미가 드러나던 기호들이 반사광의 패턴으로 변했다. 사이드 테이블에서는 토템이 이제 손과 물건을 올려놓는 장식이 되었고, 신앙의 중심축은 감상의 기반으로 전도되었다. 커튼이 달린 캐비닛에는 이상하게도 경전이 걸려 있다. 그것은 숭배의 색인 은빛 진흙으로 새겨졌는데, 선명한 글자들은 커튼에 가려지며 흐릿해져 버린다. 과거 기도문이었던 경전 속 문장은 일개 수납장 표면의 무늬로만 남은 것이다. 모두 본래의 성스러운 역할을 잃은 채, 그저 향유와 실용의 질서 속으로 완벽히 편입되어 있다.

             ❷ 두 번째 뷰 포인트. 건물 실내외 장식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보이는 위치. 크롤리즘의 장식을 세네카식으로 전유한 장식이 돋보이는 곳이다. 중심의 난간(Balustrade)은 ‘솔룸(Solroom)’의 지붕 조각, PRF 시위 희생자의 유골함, 그리고 ‘옵솔룸(Obsolroom)’의 금속 패널이 결합된 구조다. 크롤리즘의 생활에서 빛을 환대하던 지붕은 이제 완전히 닫혀 버린 차가운 금속 구조로 변했고, 생명의 잔해는 폭력의 기호로 뒤덮여 사라졌다. 기둥에 둘러진 프리즈(Frieze)에는 크롤리즘 신자들의 서약문이 일렬로 정렬되어 있고, 벽 하단의 웨인스코팅(Wainscoting)은 향로와 찻잔으로 만들어진 띠로 이어진다. 벽에는 네 여신의 상징이었던 개별 촛대가 하나의 구조물로 억지스럽게 용접되어 매달려 있다. 신성함을 담아 빛을 발하던 초는 녹아 내린 파라핀을 쌓아 둔 채 결코 켜지지 않는 덩어리로만 남았다. 이 위치에서 신앙은 오직 장식이라는 체계로 완벽히 통제된 회로 안에서 작동한다.

             뷰 포인트. 사실 그것은 세네카의 권력지향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를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도록 유도된 지점이다. 우리는 세네카가 세운 감상의 체계 밖, 관조 구역에 서 있다. 이곳의 모든 사물은 ‘초거대 녹색지대’의 정부가 개발한 초고율 광합성 유도제 PRF 나무로 만들어져, 검은색을 띤다. 세네카의 유희를 향한 욕망, 신성의 잔해로 구축된 그들의 미학을 바라보며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믿음이 장식으로 치환된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봉인된 사물들 속에서 여전히 깜박이는 미세한 빛이 있다면, 그것은 향유를 갈망하는 욕망이 아니라 사물에 잠재된 기억일 것이다.



포스트 미션

이 글의 마지막 파트, ‘포스트 미션’은 현실의 시점에서 ‘세네카의 파노라마 룸’을 바라본다. 앞서 우리가 통과한 세계—파괴에서 재생, 숭배에서 약탈, 모방에서 장식, 그리고 유희로 이어진 흐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피지배자들의 믿음은 어떻게 지배자들의 스타일이 되는가. ‘세네카의 파노라마 룸’은 그 물음에 우리의 문제를 투영하는 장치다. 해체된 신앙의 자리를 대체한 감상의 언어, 세네카의 시선은 그것을 ‘문화’라 부른다. 송승준이 그려 낸 이 풍경은, 자연을 향한 동경이 인간의 욕망에 흡수되어 폭력의 미학으로 고착된 장면이다.

             ❸ 이곳에 세 번째 뷰 포인트가 있다. 오로지 ‘솔룸 지붕 조각’만이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 이는 세 개의 크롤리즘 사물이 결합된, 가장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조형물로 공간의 중심에 놓였다. 난간을 따라 내려온 기둥 장식 위에는 한 점의 유골이 얹혀 있다. 그것은 크롤리즘 신자이자, PRF 사용에 반대하며 저항 운동을 벌였던 인물의 것이었다. 그의 몸은 두 번 소멸했다. 저항의 실패로 한 번, 장식의 일부로 또 한 번. 여기서 세네카의 잔혹성이 폭발한다. 세네카의 미감은 생명을 기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유해마저 미화하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형태의 폭력이다.

             ‘세네카의 파노라마 룸’은 미래의 상류층이 만든 역설적인 낭만의 방이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티머시 모턴이 말하듯,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비스러운 해석학적 무지의 구름” 속에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공존”하는 세계 안에 살고 있다.(티머시 모턴, 『어두운 생태학』, 안호성 옮김, 갈무리, 2024. 23쪽) 우리는 이미 “대량으로 분산된 어떤 사물의 구성원”이며, “생태적 알아차림”의 순간—인간이 자연의 외부에 서 있다는 착각이 무너지는 찰나에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같은 책, 25-26쪽) 스크린과 이미지 속에서 자연을 경험하는 우리의 방식은 세네카의 유희적 감상과 다르지 않다. 녹색지대에서 가장 먼 안전지대, 지하의 감상실. 그곳은 오늘날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환상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세계, ‘초거대 녹색지대’의 초기 구상은 송승준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DMZ 생태계에서 비롯되었다. 분단의 폭력이 남긴 비무장지대는 동시에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존재한다. 그러한 아이러니. 폭력이 생태를 낳고, 폐허가 생명을 지탱한다는 역설은 ‘초거대 녹색지대’의 원형이다. 송승준은 그 풍경을 통해 인류세의 자각을 외면한 낭만적 자연관의 위험을 묻는다. 손 닿지 않은 자연이라는 이상은, 언제나 어떤 형태의 배제와 폭력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크롤리즘 스타일》은 이러한 모순을 미래의 세계로 구성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 현재의 우리에게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