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joon Song




SeungJoon Song reexamines
cultural and historical contexts
through the concept of nature,
revealing how prejudices and
misconceptions surrounding the
notion manipulate our reality. 

Song attempts to redefine the
concept of nature from an inter
-relational ecosystem perspective
through design field in order to
deconstruct the binary thinking
between humans and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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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 Green Zone

DMZ Biod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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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녹색지대 (Hyper Green Zone)


「…2100년, 인류의 근시안적인 생태 파괴가 자체적인 조절 기능을 상실한 채 가속화되며 지구 곳곳에는 각종 바이러스와 미상의 변이 생명체가 점거한 무인지대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통제 불능의 폭력성이 정복한 이 섬뜩한 미지의 영역에 초목은 푸르른 자취를 남기며 무심한 등장을 반복했다. 대지의 녹색화는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인간의 영역을 집어삼켰고, 무성한 식물에 거칠게 뒤덮인 무인지대는 사나운 숨을 몰아쉬며 인류의 접근을 경고했다. 고요한 녹색 풍경은 인간을 위협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예고할 뿐, 그곳에서 더 이상 과거의 한적한 정취는 느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류는 자신들이 동경했던 아름다운 자연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인간의 무자비한 행적에 신이 내린 엄벌임이 분명해 보였다…」

‘Hyper Green Zone’ 오디오 가이드: audioclip.naver.com/channels/12925#clips 





1. 녹색지대를 경고하는 녹색 표지판 (Green Zone Warning Sign)


‘녹색지대’는 인류의 생태 파괴로 탄생한 각종 바이러스와 위험 생명체가 서식하는 공간이며, 인간의 접근이 제한되자 초목들로 뒤덮여 버린 금단의 구역이다. 녹색지대는 인간이 적응하지 못해 버려진 땅을 의미했고, 녹색 표지판들은 그런 녹색지대의 안팎에 존재하며 번성한 초목의 위험성을 인류에게 경고했다. 녹색 표지판의 보색 대비를 이루는 창백한 초록 판과 붉은 문구의 병치는 디지털 이미지에 담겼을 때 미세한 픽셀 깨짐 현상을 동반하는데, 이는 기술로 매개되는 인간의 완전한 지배를 초월하는 녹색 풍경의 폭력성을 암시했다. 녹색지대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오면 녹색 표지판은 달빛을 머금고 반짝이며 이곳이 녹색을 잃은 녹색 지대임을 알려주었다. 달빛은 표지판들에 반사되어 바닥에 아르누보 문양으로 일렁였는데, 이는 비행 조종사들 사이에서 ‘땅의 별’이라고 불렸으며 상공에서 녹색지대를 식별하는 기준이 되었다. 조종사들에 따르면, 하늘에서 바라본 녹색지대의 밤 풍경은 땅의 별들이 군집을 이룬 눈부신 은하수 같다고 묘사됐는데, 그 아름다운 광경이 녹색지대의 위협적인 실체와 대조되어 더욱 암담하게 느껴졌다고 전해진다. 녹색 표지판의 개수와 위치는 녹색지대의 빠른 증식 속도와 표지판의 사후 관리가 불가능한 이유로 기록이 중단되어 정확히 알 수 없다.





2. 유전자 변형 총알개미의 둥지 폭탄 (Genetically Modified Bullet Ants’ Nest Bomb)


녹색지대가 출현한 지 십수 년이 지나자 놀랍게도 인류가 미처 적응하지 못한 녹색지대에 생존 가능한 생물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인류세 이후 지속적으로 소실됐던 종 다양성이 최초로 대거 복원됐으며 지구 생태계의 불균형이 상당 부분 회복됐다고 발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접근을 위협하는 폭력이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생물다양성의 증가란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을 위협하는 폭력이 오히려 인간을 구원하는 역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극성 환경 운동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지구 환경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간의 영토를 무기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전자 변형 총알개미를 이용한 테러 무기를 개발하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신경독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총알개미는 유전자 변형을 거쳐 인간의 체취만을 쫓아 공격하도록 설계됐으며 살아있는 대인(對人) 무기로 재탄생했다. 유전자 변형 총알개미의 둥지 폭탄은 생분해성 소재로 제작되어 환경 오염을 유발하지 않으며, 1개의 둥지 폭탄에는 여왕개미 1마리와 약 10만 마리의 일개미가 서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폭탄은 2123년 3월 2일 세계 각지의 상공에서 일제히 투하됐으며 그 개수는 약 1만 개로 추정된다. 관련 테러를 일으킨 극성 환경 운동가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3. 태평양 포격전을 알리는 긴급 호외 (Urgent Extra: Pacific Shelling Incident)


세계 정부가 발행하는 녹색지대 신문에서 긴급 호외를 배포하였다. 긴급 호외는 2125년 10월 20일 오후 2시 30분, 태평양 북부 지역의 연안에서 발발한 포격 교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당시 포격전은 단순한 무력 충돌의 결과가 아니었고 그 배경에는 녹색지대와의 관계를 둘러싼 이념 대립이 있었다. 녹색지대를 중심으로 세계는 ‘CGZ(Coexistence with Green Zone)’ 사상과 ‘WGZ(War with Green Zone)’ 사상으로 나뉘었다. ’CGZ’ 사상은 녹색지대와의 공생을 주장하며 더 이상의 환경 파괴를 막고 남아 있는 현 인류의 영역에 대한 올바른 보존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반면에 ‘WGZ’ 사상은 인구 과밀 문제, 자원 부족 문제 등 인류의 영역이 줄어들며 발생한 여러 현실적인 문제의 위험을 경고하며 녹색지대와의 전쟁을 통한 녹색지대의 탈환을 주장했다. 8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참극은 급진적인 WGZ 사상을 가진 태평양 해적들에 의해 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은 녹색지대로 인해 육지의 고향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바다를 새로운 고향으로 삼은 실향민 해적들로, 난민 문제를 망각한 채 환경 문제만을 고민하는 CGZ 사상에 불만을 느끼고 CGZ 사상의 거점인 태평양 북부 연안에 무장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녹색지대의 출현 이후 CGZ와 WGZ의 과열된 이념 대립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무고한 인명 피해로 이어진 태평양 포격전으로 그들의 우려는 실질적인 공포로 바뀌었으며, 이는 녹색지대에 고립된 인류의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4. 지구의 우주인으로 불린 그린 후드 (Green Hood: Earth's Astronaut)


녹색의 의미가 공포와 위협으로 전복된 초거대 녹색지대의 세계에서 녹색을 취하는 모든 것은 위협 인자로 식별되어 폐기 처리됐다. 하지만 유일하게 녹색을 취할 수 있는 특수한 존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세계 정부 예하의 녹색지대 수색 정찰부대인 ‘그린 후드’였다. ‘강한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통제 불가능한 녹색지대는 그린 후드를 만들었다. 일반지대를 녹색지대로 뒤바꾼 원흉을 ‘점거자’라고 부르는데, 그린 후드의 주요 임무는 각 녹색지대의 점거자들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 수집이었다. 그들의 이름처럼 그들은 녹색 후드를 썼는데, 이는 특수 호흡 장치인 ‘노그(N.O.G, Neo-Oxygen Generator)’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녹색지대에서 식별된 점거자 유형의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밝혀졌으며, 이에 따라 녹색지대에 출입하는 그린 후드는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상시 노그를 착용해야 했다. 노그를 해체하는 예기치 않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그린 후드는 입소와 동시에 노그를 안면에 영구적으로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전사한 그린 후드의 시신은 정부의 감독 아래 비밀리에 봉인됐기 때문에, 노그의 생김새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우주에서 호흡 장치를 벗어선 안 되는 우주 비행사 같았기 때문에 ‘지구의 우주인’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들의 부대 휘장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을 의미했으며, 녹색지대에 침투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그들의 용맹함을 상징한 것으로 전해진다. 





5. 부모의 염원을 실은 종이배 조각 (Paper Boat Statue Carrying Parents' Wishes)


그린 후드의 수색 정찰 데이터에 따르면, 세계의 녹색지대를 정복한 점거자의 유형은 65%가 미상의 바이러스로 분석되며 나머지 35%는 그 바이러스에 의해 변이된 생명체로 추정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만큼이나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한 건 돌연변이 생명체를 둘러싼 괴담이었다. 녹색지대의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괴담은 그곳에 출입할 수 없는 인류에게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돌연변이 생명체가 작은 체구의 영유아를 사냥감으로 선호한다는 괴담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었다. 이에 따라 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종이배 모양의 조각상을 두는 문화가 생겼는데, 이 조각상은 동심의 세계 속 노아의 방주를 상징했고 아이들의 순수함이 공포로부터 구원받기를 염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럼에도, 정작 물에 가라앉는 무거운 종이배 조각상을 비웃듯 공포스러운 괴담은 부모와 아이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았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돌연변이 생명체가 영유아를 사냥한다는 괴담이 사실 세계 정부가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낸 거짓 소문이라는 것이었다. 2150년대의 세계는 녹색지대의 급격한 확산에 따른 인구 밀집 문제로 기본 질서마저 무너진 혼돈의 사회였다. 이후 세계 정부는 공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포장하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는 부모들을 더욱 분노케 할 뿐이었다.





6. 광합성의 신을 숭배하는 토템 (Totem Worshiping Photosynthesis)


녹색지대는 인류에게 공포의 상징이었지만 광합성의 신을 믿는 ‘엽록교’의 사람들에게 녹색지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엽록교는 녹색지대를 이루는 푸른 초목을 신성하게 여겼으며, 광합성을 생화학적 과정이 아닌 일종의 영적인 존재로 여기며 숭배했다. 엽록교인들에게 광합성은 태양신의 네 자매로, 태양신의 힘을 빌려 지상에 내려와 만물의 근원이 된 생명의 여신들로 묘사되었다. 엽록교는 네 자매의 선택을 받아 광합성으로 자급자족하는 호모 크로린(Homo Chlorine)이란 신인류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녹색지대의 어딘가에 호모 크로린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비리디시아(Viridishia)’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비리디시아는 생명의 여신들의 가호를 받는 땅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하며 깨끗한 공기와 함께 생명들이 춤을 추는 낙원으로 전해졌다. 엽록교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세계 각지에서 연이어 보도된 실종 뉴스 때문이다. 엽록교인들은 녹색지대의 비리디시아에 도달하기 위해 광합성을 숭배하는 토템에서 독특한 의식을 치렀다. 토템은 엽록체 모양의 금속 판재들이 팔방으로 설치된 기둥의 형태로, 그 판재들에는 태양신의 네 자매를 상징하는 네 가지 식물 분류(선태식물, 양치식물, 겉씨식물, 속씨식물)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엽록교인들은 태양이 강렬한 한여름에 토템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앉아 토템에 반사되는 태양의 에너지를 신체에 비축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태양으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비축할수록, 녹색지대 속 비리디시아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에서 광합성의 신으로부터 더 많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현재까지 녹색지대로 실종된 엽록교인들은 총 210명으로 집계되며 모두 행방불명 상태이다.





7. 어느 신부의 검은색 부케 (A Bride's Black Bouquet)


녹색지대의 출현 직후, 세계 정부의 중요 과제는 오염된 녹색지대와 원시림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과거부터 숲에 의존해 오던 인류에게 남은 원시림을 구분하고 보호하는 것은 중대한 임무였다. 또한 남은 원시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했다. 녹색지대로 인해 세계의 산림 면적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녹색지대에 접근할 수 없는 인류에게 무의미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위적으로 초고효율의 광합성을 유도하여 식물의 성장을 폭발적으로 빠르게 만드는 약제 ’PRF(Protect the Rest of the Forest)’를 개발했다. PRF 처리된 물푸레나무의 경우, 20년 동안에 ha당 191㎥의 목재를 생산하며 기존 대비 300%의 효율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PRF를 흡수한 식물은 녹색 파장까지 광합성에 이용할 수 있는 엽록소를 갖게 되며, 모든 빛의 계통을 흡수하기 때문에 잎사귀가 검은색으로 변하여 녹색지대의 초록 식물과 시각적으로 구별됐다. PRF는 전 세계 원시림의 상공에서 살포되었고, 이것은 훗날 광합성의 신을 숭배하는 엽록교로부터 광합성의 신을 모독하는 미천한 행위라며 거센 반발을 받기도 했다. 등급 낙인이 찍힌 도축장의 가축처럼 검게 물든 잎사귀는 인류만을 위해 존재하는 식물을 상징했다. 인류는 PRF 살포 이후 검은 가로수 아래를 걷고 검은 정원을 가꾸며 검은 부케로 혼인을 축복하게 되었다.